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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음/다양한 이야기

송해 선생님 프로필 나이 가족

교육심리학자 2020. 5. 5.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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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선생님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장수 프로그램인 '전국 노래자랑'을 1988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32년 넘게 맡아 오셨습니다. 그래서 송해 선생님은 어떤 분인지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원래 본명은 '송복희'입니다. 사실 이 이름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이름이 복희라서 여자 이름 같다며 엄청 놀림을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송해라는 예명으로 활동을 하시는 거라고 합니다.  1955년에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데뷔하셨습니다. 2020년 올 해에 연세가 94세이십니다. 1927년 4월 27일에 황해도 재령 출생이십니다. 그래서 선을 넘는 녀석들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서 '아직도 나는 꿈을 이루지 못했다'라고 하셨는데, 이 말은 어머니가 묻혀있는 황해도 고향에 가지 못해서 나는 아직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얼마나 고향이 또 부모님이 그리우면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아내분은 석옥이. 1952년에 결혼하셨고, 2018년 1월 20일에 사모님이 돌아가셔서 사별하셨습니다. 학교는 해주예술전문학교 성악과를 졸업하셨습니다. 24살이 되던 해에 한국 전쟁으로 월남하셔서 군대에서 통신병으로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의 통신문을 모스부호로 전송한 분이 바로 송해 선생님이십니다. 

 

그리고 55년에 창공악극단에서 가수로 데뷔했는데요. 데뷔는 가수로 하셨는데 60-70년대에 서영춘, 구봉서, 배삼룡, 이기동 선생님들과 함께 '코미디하이웨이', '고전 유머 극장' 등에 출연하시면서 직업이 가수에서 개그맨으로 옮겨가는 시기도 거치셨습니다. 그리고 1974년부터는 17년간 라디오 프로그램인 '가로수를 누비며'를 진행하셔서 가수 -> 개그맨 -> MC라는 직업 명칭이 더해졌습니다. 이렇게 정말 다양한 능력을 가지셨는데... 여기서 머무르지 않으시고 1960년대에 사실 14편의 영화에도 출연하셔서 배우라는 직업까지 가지고 계십니다.... 정말... 엄청난 재능을 가지고 계신 겁니다. 이따 밑에서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선은 차근차근 송해 선생님에 대해서 파해쳐보겠습니다. 

 

2001년도부터 한국연예협회 제8회 대한민국 연예예술상 대상 문화훈장을 비롯 2004년에는 KBS 바른 언어상을 수상하시고, 2014년에는 제5회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을 받으셨습니다. 

 

가수로서 앨범을 참 많이 발표하셨습니다. 순서로 나열해 보겠습니다. 

 

1971년 8월 18일 코메디와 경음악 발매

2003년 6월 17일 애창가요 모음집 발매

2014년 1월 17일에 트로트 송해쏭을 발매하셨습니다. 총 6곡이 수록되어 있는데요. 신명나는 세상이 타이틀곡입니다. 그리고 '내 나이가 어때서', '나팔꽃 인생', '신명나는 세상(Inst.)', '내 나이가 어때서(Inst.)', 나팔꽃 인생(Inst)입니다. 

2015년 3월 4일에 유랑청춘을 발매

2016년 12월 8일에는 내 인생 딩동댕을 발매

2017년 7월 1일에 송해 아흔즈음에를 발매

2018년 7월 24일에 딴따라를 발매

2019년 11월 8일 내고향 갈 때까지를 발매

 

이렇게 참 오랜 세월동안 멈추지 않고 끊임없는 도전을 하셨습니다. 

음... 마음 이야기를 잠깐 하자면 1986년도에 아들이 아버지 송해 선생님께 오토바이를 사달라고 엄청 졸랐는데... 계속해서 반대를 했답니다. 근데.. 외아들이고 사모님께서 아들의 부탁을 계속 거절하지 못하고 오토바이를 사줬는데.. 그만 1987년 지금의 한남대교에서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그 이후로 송해 선생님은 한남대교로 절대 다니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현재 한남대교는 옛날 '제3한강교'로 불리는 곳입니다. 사실 이 다리의 이름으로 혜은이 씨가 1979년도에 제3한강교라는 노래를 발표해서 엄청 히트를 쳤고, 1988년도에는 앙코르 앨범을 다시 발매하면서 전국을 강타했었습니다. 심지어 1979년 11월 8일에 제3한강교라는 영화까지 상영되어서 상징성 있는 다리의 이름입니다. 그런 곳에서 아들이 죽어서 늘 마음이 아파 그곳으로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아들을 잃은 상실감을 잊고 싶으셔서 더 많은 방송일을 하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바쁘게 사셔야 아들에 대한 아픔을 잊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전국노래자랑은 뭐 이야기 안 해도 아실 겁니다. 거의 30년 넘게 하셨고, 영화를 잠깐 적어보면 1963년 YMS 504의 수병부터 시작해서 2013년 전국노래자랑이라는 영화까지 16편에 출연하셨습니다. 밑에 쭉~~ 나열해 보겠습니다. 

 

1963년 YMS 504의 수병

1966년 요절복통 007

1968년 남자 미용사

1968년 단벌 신사

1969년 어머니는 강하다

1969년 남편

1969년 내 판자가 상팔자

1969년 신세 좀 지작요

1969년 특등비서

1970년 할아버지는 멋쟁이

1970년 구혼 작전

1970년 운수대통 일보직전

1986년 방황하는 별들

2002년 울랄라 씨스터즈

2003년 동해물과 백두산이

2013년 전국 노래자랑

CF에도 엄청 출연하셨습니다. 1970년 삼립식품 하이면 부터 시작해서 2019년 달성군청 CF까지 유명한 CF에 엄청 출연하셨습니다. 

 

뭐 이런 이야기들보다 좀 의미 있는 글로 마무리해보려고 합니다. 

 

트로트 가수 유지나 씨를 아실 겁니다. 유지나씨가 중학교 1학년때 유지나씨의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이런 유지나씨와 황해도에 어머니와 여동생을 두고 남한하셔서 가족을 잃으셨고 실제로 또 외동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으셔서 외로웠던 송해선생님... 이렇게 두 분은 서로가 채우지 못하는 아픔이 있었는데 이러한 아픔으로 유지나씨는 송해 선생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송해선생님은 유지나씨를 딸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스케쥴 없으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송해선생님을 찾아뵌다고 할 정도로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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